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세급 전함 (문단 편집) === 원판 불변 === ||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750a03ff-s.jpg|width=100%]] || || 1918년의 이세급 전함 2번함 휴우가 || 아무리 설계자가 영국의 [[그리니치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내에서는 함선설계의 권위자였다지만, 당장 영국이나 미국의 최첨단 설계를 직접 설계도를 보거나 [[역설계|실물을 뜯어 보지도 않고 눈으로만 보고 설계사상을 파악해서 재현해내기는]] 매우 어려웠으며, [[러일전쟁]]후 [[영일동맹]]도 반쯤은 의미가 없어서 [[공고급 순양전함]]처럼 [[영국]]으로 부터의 설계/기술 제공과 [[라이선스]]는 꿈도 못꿀 지경이였다. 그리고 어찌저찌 해당 설계를 카피해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열악한 자체 기술력으로는 발달한 기술을 지닌 선진국의 기술 도입이나 협조 없이는 설계도가 있어도 제대로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결국 현실적인 한계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으며, 이미 만들어져 있는 [[후소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후소와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전장의 길이를 보다 연장하여 속도를 증가시켰다. 전장이 길어지면 세장비라고 하는 함선 수선부의 전장과 전폭의 비율이 올라가면서 항행시 고속을 내기가 쉬워진다. * 포격전의 사통체제와 데미지 컨트롤의 조절을 위해 6기의 2연장 주포탑을 모두 3조로 나누어서 배치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계단식으로 배치된 전방의 1, 2번 주포탑, 사령탑을 포함한 조타함교. 제1연돌과 그보다 약간 낮은 제2연돌, 후방으로 향한 3, 4번 주포와 다시 1층의 관측소를 가진 삼각장(三脚檣). 후부함교와 역시 후방으로 향한 5, 6번 주포를 배치하는 형태다. '''중앙부 주포탑이 존재하지만''' 중앙부 주포탑 2기를 1조로 묶어서 배치함으로서 후소급 전함에 비해 쓸데없이 나누어진 공간을 줄이고 중앙부 주포탑 2기를 분리해서 배치한 것보다 공간 잠식을 줄인 성과가 있었다. * 주포탑의 전면장갑도 305mm로 증가, 갑판장갑도 합계 85mm로 증가했다. 후소급 전함의 경우에는 주포탑 전면장갑을 비롯해서 장갑이 얇은 부분이 많은게 큰 문제였는데 그걸 어느 정도 해소했다. * 부포를 위력보다는 속사능력과 급탄의 용이함이 더 우수한 5.5인치(140mm) 함포로 교체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인의 체격문제로 6인치(152mm) [[포탄]]의 인력장전이 힘든데다가 프랑스에서 조선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조선관의 건의가 먹힌 결과다. * 터빈을 브라운 커티스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 전함으로서는 준수한 23노트를 달성했다. 일단 주포 배치는 [[뉴욕급 전함]](New York-class battleship)의 이전형태인 [[와이오밍급 전함]](Wyoming-class battleship)에서, [[부포]](副砲)는 프랑스의 [[쿠르베급 전함]](La classe Courbet)을 참고하는 등 나름대로 외부의 설계를 받아들여서 성능이 향상되었지만, 후소급 전함을 기반으로 한 설계가 발목을 잡았다. 당장 주포가 후소와 같은 1908년 방식인 41식 14인치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인데다가 수량도 동일하므로 물리적인 화력강화가 안된데다가 방어구획의 배치도 피탄시의 방어(Sprinter defense)를 강화해 중량이 후소 기준으로 약 1,000톤이 넘어갈 정도로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부족으로 인해 주포의 3연장화를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2연장 주포탑을 유지함으로서 '''주포탑을 6기나 탑재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장갑강화효과가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하므로 실질적인 방어력은 후소급 전함보다 조금 개선된 수준이다. 게다가 부포가 15.2cm에서 14cm으로 구경이 감소되면서 1발의 포탄당 중량감소로 인하여 후소급 전함과 동일한 부포수량을 갖추게 되면 나타날 함내 부포사격탄량 부족이라는 화력약화를 막으려고 단장포곽 20문으로 포문을 늘리고 3, 4번 주포도 계단식이 되어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기 위해 최상부 갑판을 3번 주포까지만 연장하는 단축형 선수루형 선체가 되자, 반대급부로 사람이 들어가 잘 공간인 거주구획을 넣을 곳이 부족해졌다. 결국 부포의 포곽중 일부도 거주구획에 포함시켜 [[범선]]시대 [[전열함]]이나 하던 엽기를 저질렀다. 이 행위가 왜 엽기인가 하면 일단 무기와 탄약 틈에서 잠을 자야 하는 [[수병]]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과거 전열함 시대와는 달리 긴급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시 즉시 사격하기 위한 즉응탄과 기타 관련시설이 밀집해 있으므로 잠자다가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발포가 이루어지거나 유폭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주성'''은 당시 세계에서도 거주성이 지랄맞기로 악명높았던 [[연합함대]]의 함선 가운데서도 당당히 수석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후소급 전함보다는 그럭저럭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므로 1917년 12월 15일에 이세가 준공되었고, 곧 이어 자매함인 휴우가가 준공됨으로서 [[나가토급 전함]]이 등장하는 1920년 이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군함으로 그 이름을 날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